제목 우리는 왜 그녀를 지키지 못했을까?
조회수 1,087 등록일 2020-11-05
내용

[호외]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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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민석 법무법인 산하 대표변호사

나는 작은 아파트를 관리한다. 서민들이 모여 사는 낡은 아파트다. 신경 쓸 곳이 수두룩하지만, 없는 살림에도 좀 더 꼼꼼히 따지고 세심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내가 관리책임자로서, 소장으로서 맡은 바 직무를 다하다 보면 낡은 아파트는 입주자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보금자리가 된다. 단정하게 정리된 조경과 화단, 현관과 복도를 보면 내 마음도 깨끗해진다.  
얼마 전 동대표 회장이 바뀐 후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 관리비 통장을 회장 단독 인감으로 바꾸라고, 회장 업무추진비를 늘리라고 한다. 모두 법에 어긋나고 관리규약에 반한다. 알아듣게 설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통장 인감을 바꿔야 한다고, 출금 메시지를 자신이 받아봐야겠다고 몇 번이고 은행에 동행을 요구했다. 오늘은 어제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출근을 했는데, 통장을 분실했다며 은행을 다녀오자 한다. 경비와 미화를 빼면 직원은 단 한 명, 관리사무소를 비워 둘까 외근 한번이 조심스러운데, 끝 모를 은행 왕래는 대체 언제 끝나려나? 관리비 유용을 캐묻는 일에 대꾸하는 것도 피곤하다. 거기가 거기인 관리비 씀씀이를 두고 무엇을 의심하는지 답답하다. 통신비 자동이체를 왜 신청했느냐고 호통한다. 우리 단지는 대상도 아닌데, 이대로는 업무도 못 보고 미쳐버릴 것 같아 외부회계감사를 받기로 했다. 그 사이 회장은 또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거절했더니 “회장인 나를 의심하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회계감사가 오늘로 끝이다. 괜한 감사지만, 회장의 의심만 덜 수 있다면, 괜한 오해를 풀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상념이 꼬리를 문다. 그때 느닷없이 회장이 관리사무소에 들이닥친다. 그의 손에 든 것은… 그 손에는… 아니 왜… 대체 왜? 

300세대 가까운 보금자리를 가냘픈 몸으로 가꿔오던 여성 소장이 끔찍한 범죄에 희생됐다. 주택관리사로서의 소명과 윤리를 성실히 지켜왔기에 그녀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 그토록 충실했던 우리의 이웃이자, 벗이자, 전문가를 왜 우리는 지키지 못했을까? 
어처구니없는 탐욕으로부터 입주자들 재산을 지키고자, 수많은 협박과 강요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녀를 왜 입주자들은 지켜주지 못했나? 아니, 그녀가 불의와 부정에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아파했던 세월을 입주자들은 알기나 할까? 상식은 미달되지만 욕심은 하늘을 찔렀던, 결국 천인공노할 범법행위조차 서슴지 않은 사람을 대표로 선출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수없이 관리사무소장을 갈아치워 오던 아파트 단지의 관리업무를 수주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고 기뻐하던 위탁관리회사는 왜 그녀를 지키지 못했을까? 다달이 위탁관리수수료가 입금되는 날만이라도 그녀를 떠올리긴 했을까? 서글프고 서러운 핍박이 거듭돼도 왜 그녀는 소속회사에 하소연 한 마디를 못했을까? 과연 회사는 그녀의 고충을 알고는 있었나, 아니 알고 싶은 마음은 있었을까? 정녕 위탁관리회사는 소장의 울타리가 돼줄 수 없는 것일까?
공동주택관리의 지도·감독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지도와 감독을 했을까? 1년에 겨우 4시간, 동대표 의무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자족하진 않았나? 그 대표회장은 과연 교육을 받기는 했을까? 교육을 받아도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없다면 그런 교육은 왜 하는 걸까? 관리소장 하나 죽은 걸로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가 아파트값 떨어뜨린다고 욕먹을 걸 걱정하지는 않나? ‘왜 하필 우리 동네에서’라며 조용해지기만 기다리고 있을까? 
주택관리사 제도를 만들고, 관리주체에게 집행업무를 부여한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입주민 갑질에 경비원이 생을 마감하고, 서울 강남, 경기도 부천에서 폭언과 협박을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관리사무소장이 죽어가는데도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 죽는 것까지야 어떻게 하냐는 마음이라면 이제 관리사무소장이 대낮에 살해당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무언가 바뀔 수 있는 것일까?   
그녀의 죽음 앞에 속보를 쏟아낸 언론은 속도가 생명이었을까? ‘입주자대표, 운영 다툼 끝에 관리소장 살해’, ‘관리비 갈등에 관리소장 살해’ 이런 제목이 얼마나 그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인지 정녕 모를까? 갑-을 관계의 절정판, 아파트 관리문화를 우리 언론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녀가 죽기 전 언론에 제보했다면 과연 언론은 다뤄줬을까? 소장의 횡령, 배임, 부정이라면 득달같이 기사화했을 건 분명해 보이는데….
나는 그녀의 죽음 앞에 떳떳한가? 주택관리사 단체의 행사와 활동, 국회 토론회,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장들에 대한 교육과 강의, 언론 기고. 틈나는 대로 활동하고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고는 해왔는데. 왜 스스로 삶의 끈을 놓는 것도 모자라 이제 주택관리사로 사는 것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할 지경까지 온 걸까? 무엇을 했어야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까, 대체 무엇을 했어야…. 
어디서부터,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망연한 현실에 우울함과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려 애쓰지 않으련다. 조금 더 아프고 슬퍼지려 한다. 어차피 앞서 나가 맞이해야 할 길고도 긴 싸움을 위해, 굳건히 맞잡아야 할 더 많은 연대의 손길을 기다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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