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편함에 투입한 입주민 서신 회수 ‘문서은닉죄’
조회수 1,195 등록일 2021-10-22
내용

  <관련기사 제1235호 2021년 9월 29일자 게재>

 

1. 사건의 경위

 가. A는 본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고, C는 본건 아파트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모임의 회장이다. C는 본건 아파트에 발생한 하자에 대해 각 세대를 위한 보상금이 나왔는데도 A가 이를 임의로 제3자 명의 계좌로 이체했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의 과정에서 욕설 등을 했다는 내용의 문서(이하 ‘본건 문서’라 약칭)를 각 동 1층에 설치된 세대 우편함에 투입했다.
나. A는 입주민으로부터 허위사실이 기재된 불법유인물이 아파트 우편함에 무단으로 배포됐으니 회수해 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A는 관리사무소로 찾아가 소장 E와 직원 F에게 위 문서들을 회수할 것을 지시했고, E와 F의 지시를 받은 경비원들이 각 세대 우편함에 투입된 문서들을 회수했다. 
다. A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입주민들은 본건 문서에 기재된 내용을 보지 못하게 본건 문서를 은닉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다. 이에 대해 법원은 A의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 법원의 판단 
 
가. 문서은닉죄의 구성요건 해당

문서은닉죄는 타인 소유 문서의 소재를 불명하게 해 발견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효용을 해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형법 제366조). 별도로 영득의 의사를 요하지 않고 문서 소유자로 하여금 그 소재를 알지 못하게 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유자에 대한 문서은닉죄가 성립한다. 설령 정당한 목적을 위해 문서를 옮긴다고 생각했어도 이는 범행의 동기에 불과하고 문서은닉의 범의 자체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소유인 본건 문서를 회수한 행위는 문서은닉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없어지는지

광고물을 아파트 우편함에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1항 제1호, 제3조,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9호 등). 뿐만 아니라 입주자 등은 공동주택에 광고물을 부착하려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 본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더라도 관리주체는 동의 없이 아파트 내에 무단 배포된 광고물을 제거할 권한도 있다. 따라서 본건 문서를 회수한 행위가 법령에 근거한 정당행위에 해당되는지 문제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건 문서는 입주민들에게 공동 관심사안에 대한 B의 의견을 알리는 서신에 해당하므로 법령에 의해 무단 배포가 금지되거나 관리주체가 회수할 수 있는 광고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 문서를 회수해 달라는 입주민의 민원이 위법성을 없애는지

A는 본건 아파트 입주민들로부터 본건 문서를 회수해 달라는 민원을 받고 회수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무엇보다 본건 문서는 세대 우편함에 투입됨으로써 해당 우편함의 호실에 거주하는 입주민의 소유물이 됐다. 문서를 회수해 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더라도 해당 세대의 문서만 회수할 수 있을 뿐 다른 호실의 우편함에 투입된 문서까지 회수할 권한은 없다. 따라서 문서를 회수해 달라는 민원이 있었다 하더라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은 주민들의 우편함에 있는 문서를 회수한 행위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3. 판례평석
   
아파트는 여러 사람들이 살다 보니 같은 일을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되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아 이견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비판은 참기 어려운 비난을 동반하고, 해명하는 입장은 모욕을 당한 것처럼 억울하기만 하다. 모두를 위해 중지를 모아 행한 일에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파트 업무는 어떤 면에서는 한 나라의 정치판과 비슷하다. 선거를 통해 동별 대표자들이 뽑히고, 이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주체와 함께 아파트의 여러 업무를 집행한다. 그 과정에서 진행한 모든 사업과 업무가 입주민들의 환영을 받지는 못한다. 
동별 대표자나 입주자대표회장에 입후보하면서 이전 기수 입주자대표회의의 전횡과 위법을 파헤치겠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낯설지도 않다. 적폐 청산은 정치판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겸허한 자세로 이견을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풀어나가기보다는 모욕과 비난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는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 각 세대 우편함에 투입되는 순간 문서는 그 세대의 소유가 된다. 남의 소유가 된 문서를 함부로 회수하면 문서은닉죄가 성립한다.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허위사실로 입주민들을 호도한다’며 없애버리고 싶어도 세대 우편함에 꽂힌 문서를 회수하는 즉시 문서은닉범이 되고 만다.

김 미 란 부대표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https://www.hap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685]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