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과로 누적에…경비실 앉은 채 사망 “업무상 재해”
조회수 1,581 등록일 2021-05-06
내용

<관련기사 제1211호 2021년 3월 31일자 게재>


1. 사건의 경위

가. J는 2009년 2월 1일부터 본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중 2018년 9월 11일경 경비원 의자에 앉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발견된 지 40여 분 만에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심장동맥경화증 관련 급성 심장사로 추정됐다. 

나. J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J가 업무적인 요인이 아닌 개인적 위험 요인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 이에 J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를 제기했다.


2. 법원의 판단 

가. 소장의 퇴직과 J의 업무상 과로

본건 아파트는 본래 소장 1명, 경비원 2명이 관리업무를 담당해 왔으나 관리비 절감 목적으로 2018년 4월경 소장이 퇴직했다. 그러자 종래 소장이 전담하던 제초·전지·방역 작업과 화단관리, 조경 등의 업무가 경비원의 업무로 추가됐다. 제초작업은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무렵, 장마가 끝난 8~9월 무렵에 진행된다. 주차된 차에 돌이 튈 염려가 있어 제초작업은 기계가 아닌 호미로 작업해야 했다. 전지작업은 보통 1년에 1회 이틀에 걸쳐 하는데 여름이 되기 전에 시행했다. 방역 작업은 10kg정도 되는 방역 장비를 메고 통상 일주일에 1회, 여름이나 비가 올 때는 일주일에 2회 실시했다. 조경 업무는 화단에 물을 주고 나무가 고사하면 새로 나무를 심는 업무까지 포함됐다. 위와 같이 소장이 전담해 오던 위와 같은 업무는 경비원 2명에게 고르게 나눠지지도 않았다. 위 아파트에 9년 넘게 근무한 J와 달리 다른 경비원 자리는 수시로 교체됐고, 다른 일을 겸직하는 등 근무 태만이 잦았다. 결국 퇴직한 소장의 업무는 J에게 훨씬 더 많이 가중됐다.

뿐만 아니라 추가로 부담하게 된 소장 업무가 여름철에 집중되는 업무였던 점, 2018년 여름은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된 점, J가 종전에 담당하지 않았던 업무를 추가로 담당하면서 과중한 부담을 겪던 중 9월 초경 사망한 점 등을 감안하면 J의 업무가 상당 부분 과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 업무상 스트레스 

본건 아파트의 주차 면수는 116대인데 비해 등록 차량은 235대여서 입주민 간 주차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주차관리는 경비원의 주된 업무인데 이와 같이 주차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달리 해결할 방법도 없는 J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사망 일주일 전에는 이중 주차 문제로 입주민의 폭언을 듣기까지 했다. 


다. 업무상 과로·스트레스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는 인정된다.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때도 그 증명은 인정된다. 사안에서 J는 평소 건강 문제를 호소한 바 없고, 심혈관계 질환을 이유로 치료를 받은 자료도 보이지 않는다. 본건 아파트에서 약 9년간 유사 업무를 수행하던 J가 소장 퇴직 후 업무가 추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입주민과 주차 갈등을 겪은 후 사망한 것에는 직무 과중,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 J는 소장 퇴직으로 업무가 추가돼 업무상 과로, 주차관리 과정에서 듣게 된 폭언 등으로 받게 된 스트레스가 심장동맥경화를 유발했거나 기존의 심장동맥경화를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단된다. 따라서 J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3. 판례평석

과로가 누적돼 앉은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목숨마저 잃은 경비원. 고단했을 그의 삶에 업무상 재해조차 인정되지 않았다면 그 억울함과 원통함이 어떠했을까.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되돌려 불행을 막고 싶은 충동이 인다. 관리비 절감이라는 알량한 욕심을 내려놓고, 소장의 업무는 소장이 담당했다면 어땠을까. 소규모 공동주택으로서 의무관리대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의 지도·감독권에서 벗어나 있던 본건 아파트. 약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흠결을 조속히 찾아내 사각지대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경비원을 향한 입주민의 갑질 사례가 무수히 쌓여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경비원 등 근로자의 업무가 함부로 가중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법령에 명확히 규정하고 위반 시 실효성 있는 제재 마련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