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문과 놀자!/김미란 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법정에서 판사의 역할과 ‘처분권주의’ 원칙
조회수 871 등록일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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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영된 MBC 법률드라마 ‘개과천선’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우리는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재판부의 명쾌한 판단으로 결국 억울함을 푸는 이야기를 주로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 만나는 법정은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법정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1분이 안 돼 끝나는 재판도 있습니다.

 그래도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며 열변을 토하거나 비록 유죄라 하더라도 양형상 참작할 만한 점을 호소하는 형사소송은 그나마 낫습니다. 민사소송은 드라마틱하기는커녕 다소 지루하고 건조하기까지 합니다.  

 화려한 언변은 간데없고 간단하게만 보이는 변론을 이어가는 변호사, 장황하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 주장을 제대로 정리해 오라며 거듭 입증을 촉구하는 판사의 얼굴에는 짜증이 섞일 때도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홀로 법정에 선 사람은 난생처음 겪는 법정의 풍경이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뭘 어떻게 정리하라는 것인지, 지금 이야기한 것으로 뭐가 부족하다는 것인지, 더 이상 어떻게 입증하란 것인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고을 원님처럼 진실을 꿰뚫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리라 기대했던 당사자들은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을 원님이 재판하던 시절이 아닐뿐더러 판사가 신처럼 진실을 꿰뚫어 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정해진 사법 절차에 따라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법리에 따라 판결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미건조해 보여도 법정은 치고받는 전쟁이 벌어지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정해진 룰에 따라 제대로 다투어야 합니다. 소송 절차에서 정한 룰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싸우다 보면 어이없게 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민사소송법 제203조는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하여는 판결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처분권주의’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민사소송의 대원칙 중 하나인 처분권주의는 사적자치 원칙이 소송 절차에 투영된 것으로 소송의 개시와 종결, 심판 범위의 특정에 대해 당사자에게 주도권을 주고 그 처분에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르면 소송은 당사자의 신청이 있어야 시작되고,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부분까지 재판할 수는 없으며, 일단 소송이 개시되더라도 당사자는 소의 취하나 청구 포기 또는 인낙(인정해 승낙함) 등을 통해 소송을 종결할 수 있게 됩니다. 재판을 통해 심판하는 범위를 당사자가 신청한 부분에 한정한다는 원칙 때문에 법원은 당사자가 신청한 범위를 넘어서 재판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잘 판단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제아무리 똑똑하고 친절한 판사라 하더라도 처분권주의 위반의 위법한 판결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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