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퀸스 갬빗’의 영웅서사 속 차별의 카무플라주
조회수 949 등록일 2020-12-07
내용

육아휴직이 끝나가는 엄마들을 보며... 베스의 시대에 비해 우리사회는 나아졌을까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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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마치 신인류(新人類)와 같은 용모의 안야 테일러 조이, 이번에는 어색하게 콧수염을 기르고 나온 ‘러브 액츄얼리’의 꼬마 드러머 토마스 생스터가 출연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 ‘퀸스 갬빗’. 총 7부작이고 시즌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완결이 되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재밌고 흥미진진합니다. 


보육원에서 건물관리인 샤이벌에 의해 처음 체스를 접하게 된 베스. 그녀는 체스에 엄청나게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약물을 이용해 밤마다 고퀄의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래지 않아 샤이벌을 꺾은 것은 물론, 고등학교 체스클럽 오빠들과 한 12 대 1 다면기(多面棋)에서도 완승을 거두게 됩니다. 쑥쑥 실력이 오른 베스는 주(州) 체스대회에 나가게 되고,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 의 터커 중령을 닮은 접수 테이블의 쌍둥이의 무시를 받으며 인생 첫 공식전을 시작합니다. 첫 상대는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이 분은 나중에 의대에 진학합니다) 이들의 경기 테이블에는 공용 식수통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여성이 당하는 차별과 무시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딱 첫 대회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한편 당시에 쌍둥이는 베스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랭크도 없는 듣보잡이면서 큰소리 뻥뻥 치고 호언장담을 한 점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었고, 그녀가 실력을 확인시켜준 이후에는 곧바로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로 태세 전환을 하게 됩니다.

첫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계속 승리하면서 베스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가끔씩 패션 등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기자가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인생 바운더리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실력을 존중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그 누구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경시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베스의 실력과 능력에 전치(前置)시키지 않았으며, 탑티어의 반열에서 최강자 보르고프를 꺾고 전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마스터가 되어버리면서 그녀에 대하여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회에서 ‘해리 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의 할아버지 버전으로 생긴 러시아의 고수를 꺾은 직후 베스가 “당신의 기보를 수없이 보며 공부했습니다”라면서 품격 있는 매너를 보이고,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상대한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체스 선수이다”라는 말로 화답한 장면, 보르고프가 베스에게 킹을 쥐어주면서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그녀를 전심(全心)으로 인정해준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베스의 서사만 놓고, 당시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만 하면 여성으로서 짊어진 차별의 굴레는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베스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마트에서 동창을 만났는데 이 동창은 졸업 이후 곧바로 결혼을 하여 아기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였습니다. 이들은 총 두 번 조우하였는데 동창은 두 번 다 술병을 한가득 담은 봉투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그녀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즉 베스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였고, 당시 여성들은 대부분 이 동창과 같은 삶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업주부가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열위에 있다거나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허여하는 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의 수혜를 받지 못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에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접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식이 바뀌고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직까지도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고 아직 꼬물꼬물거리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고, 어린이집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해 대기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이들의 더 큰 걱정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비단 엄마들에 국한되는 고민이 아니긴 하지만,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하는 것은 대부분 엄마들이지요.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꾸 법령의 개선이나 거시적인 제도의 개편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어린이집의 확충과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투하한다면 훨씬 더 짧은 기간 안에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딸아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아내의 육아휴직 종료일이 다가오니, 고아 소녀의 인생 역정과 멋진 성공을 그린 미드를 보면서 국가의 제도와 정책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여러분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webmaster@lawtv.kr

출처[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3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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