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당방위 유감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조회수 1,232 등록일 2020-02-11
내용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은 정당방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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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정당방위’를 위법성 조각 사유의 한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것은 행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였을 때 일견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해당 행위가 궁극적으로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되는 사유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은 물론 위법한 것이지만 전시 상황에서 공격하며 다가오는 적군을 살해한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문제될 수 있는 상황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는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입니다. 즉 의사에 반하여 키스를 당하는 상황에서 키스를 시도하는 상대방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행위의 죄책에 관한 것입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불구에 이르게 한 것으로서 중상해죄가 성립하여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게 됩니다.

최초의 판결은 1965년에 나왔습니다. 19세 여성이 자신에게 구애하던 21세 남성으로부터 강제키스를 당하는 상황에서 남성의 혀를 깨물어 1.5㎝를 절단하였는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여성의 집이 범행현장으로부터 약 150m 거리에 있었는데 소리를 질러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 등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특히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은 위 판결로부터 24년 뒤에 나왔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구고등법원은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정조와 신체의 안전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엉겁결에 추행자의 혀를 물어뜯게 된 것‘이라고 보아 정당방위를 인정하였으며,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확정하였습니다.

1990년에 개봉한 원미경, 이영하 배우 주연의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 여성은 제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이미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자로 소문이 난 이후에 서게 된 재판정에서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진술을 합니다.

신체 부위 중에서 혀는 외부에서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라는 점, 강제키스를 당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혀를 절단하겠다는 의도를 품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의 혀가 절단되어 피를 뒤집어쓰게 되는 추행의 피해자가 겪을 정신적 충격 등을 감안하면 과연 이러한 경우에 혀가 절단된 추행범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최근에도 이러한 유형의 사건이 가끔 발생하고 있는데, 결론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건마다 구체적인 사정과 정황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강제키스 상황에서 혀를 절단하는 행위를 유죄 또는 무죄라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방위는 예외에 속하는 것이니만큼 이를 폭넓게 인정할 것은 아니지만, 범죄의 피해자가 방어행위 과정에서 심대한 정신적 충격을 겪었음에도 다시 가해자로서 수사를 받고 형사책임을 지는 부당한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lt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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