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화 ‘가버나움’ 속 법 이야기 〈2〉‘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을 원인으로 한 박해
조회수 1,454 등록일 2019-10-10
내용

화제의 방송 드라마, 영화 콘텐츠 중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김인석 변호사는 영화 '가버나움'을 통해 난민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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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석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영화 ‘가버나움’ 속 주인공인 자인은 12살로 추정되는 소년으로,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어린 동생들과 함께 과일주스를 팔고, 슈퍼마켓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활하는 소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자인에게 부모나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인의 부모는 자녀들을 보호나 양육의 대상이 아닌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노동력 정도로 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인에게는 한 살 어린 여동생 사하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하르의 초경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자 자인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집니다. 부모가 사히르를 평소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던 슈퍼마켓 주인에게 팔아넘기듯 시집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그 일을 막아낼 수 없었던 자인은 그 길로 집을 나와버립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풍습에 따라 영화 속 사하르와 같이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또한 소말리아 출신의 모델 와리스 디리가 쓴 '사막의 꽃'이라는 책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에 대한 할례라는 끔찍한 풍습이 여전히 자행되기도 합니다.

박해란 '생명,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을 비롯하여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을 야기하는 행위'(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6두56080 판결)를 말하기 때문에, 조혼과 여성 할례 등은 국내에서도 이미 드물지 않은 난민 신청 또는 인정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가버나움’ 속 사하르의 사연과 같은 조혼은 5대 박해 사유 중 어떠한 원인에 포섭되어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일까요.

지난 회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 난민법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의 5가지 박해 사유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중 4번째 박해 사유에 해당하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이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우리 대법원은 ‘특정 사회집단’과 관련하여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선천적 특성, 바뀔 수 없는 공통적인 역사, 개인의 정체성 및 양심의 핵심을 구성하는 특성 또는 신앙으로써 이를 포기하도록 요구해서는 아니 될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이들이 사회 환경 속에서 다른 집단과 다르다고 인식되고 있는 것'(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6두56080 판결)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특정인이 그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범주화되어 구별 내지 차별화될 수 있는 집단에 속하는 신분을 가졌고, 이로 인해 그 사회 내에서 중대한 차별 등의 박해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박해 사유에 포함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에 속하여 박해를 받을 공포를 가진다는 주장은 인종, 종교, 국적 등 다른 사유에 기인하여 박해의 우려가 있다는 주장과 중복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놓고 볼 때 한 사회 내에서 여성이 약자로서의 위치에 있고 해당 국가권력이나 사회가 이들에게 적절한 비호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공하지 않음이 인정된다면 여성이라는 신분 또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영화 속 사하르는 다른 국가로 이주하여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을 만한 박해를 경험하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1951년 난민협약 채택 당시 기안자들이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으로 특히 염두에 뒀던 집단은 냉전시대 동유럽에서 사회적 계급 혹은 계층을 이유로 박해를 받던 지주, 자본가, 사업가, 중산층 및 그들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특정 경제적 계층에 속하는 집단 이외에도 퇴역군인, 학생, 부족, 노동조합, 여성, 동성애자 등의 다양한 집단이 특정 사회집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사회 속에서 각기 다양하게 계속 변화하는 집단들의 성격 및 계속 발전하고 있는 관련 국제 인권규범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는 발전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성별, 출신 지역, 성적 지향, 경제력, 학력 등의 일괄적인 잣대를 들이대 사람을 범주화하고 우선 그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려 드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부터 돌아보고자 합니다.

김인석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lt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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