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칼럼] 예비법조인들의 사회진출에 관한 당부
조회수 846 등록일 2019-01-2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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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변호사(법무법인 산하, 사법연수원 31기) 

 

필자는 2002년 초에 개업을 해서 15년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개업 4년차인 2006년부터 작년 말까지 매년 적으면 한두 명, 많으면 4~5명씩 신입변호사를 뽑아왔다. 10년간 도합 18명을 채용한 것이다. 시장에 쏟아지는 많은 신규변호사들의 치열한 취업경쟁 탓에 매번 채용예정인원 수십 배에 달하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도 진행했다.  

필자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는 로펌에 자리 잡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서 올해만 해도 사법연수원 수료시점 취업률이 50%를 밑돈다거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수료 후 법조직역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이 열 명 중 네 명에 불과하다는 언론기사를 접할 지경이 되었다. 실제 변호사 채용과정에서 받는 느낌은 그보다 더욱 심각하다. 물론 후배 법조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선배변호사의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취업시장에 도전하는 예비법조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것은 예비법조인들이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얼마나 하였는가 이다. 사법연수원 재직 시절 필자 역시 사회진출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 지금 예비법조인들의 취업환경은 그 시절과 비교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은 십여 년 전 필자가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최소한의 취업이 보장되었기에 무난히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 이상의 대책은 선택사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예비법조인들의 사회진출 준비 수준은 이전 관행 그대로이다. 수강과목 선택 및 학점취득, 실무수습, 자격증준비, 각종 수상내역을 비롯한 스펙을 훑어보면 사회진출을 위한 방향성이나 일관성이 잘 읽히질 않는다. 그나마 그런 것이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겉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금융, 저작권, 국제거래 등에 집중되어 있다. 

사회에 나와 보면 알겠지만, 이런 인기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대형로펌 몇 곳을 제외하고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예비법조인들이 모두 대형로펌을 목표로 삼고 취업준비를 하는 셈이다.  

나이, 학벌, 경력 등을 종합해 내가 대형로펌이나 전문기관에 취업할 수 있겠는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어렵다면 오히려 훨씬 많은 변호사들이 밥벌이를 하고 있고, 새로운 변호사에 대한 수요도 꾸준한 등기, 임대차, 가사, 형사 등 전통적 시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분야를 더욱 세분화(상가 임대차, 성년후견, 상속, 경제범죄 등)하여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사회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방향설정은 도서관에 앉아서는 잡히지 않는다. 재조·재야를 막론한 선배법조인, 로스쿨 교수님들, 타 직역 전문가집단, 공무원 등 조언과 경험을 전해줄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발로 뛰고 경청하고 고민하여 미래를 열어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당신은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에 숫자 하나를 더하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사법연수원 동기 중 한분은 매우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비슷한 연배의 연수생들이 거의 모두 취업을 포기하고 개업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이분은 연수원 입소 후 중국어에 집중했다. 중국인에게서 회화 개인교습을 받았고, 휴가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법률시장을 탐방했다. 연수원 수료 전까지 틈틈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는 로펌이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변호사 자격증 취득 후 곧바로 중국지사를 내려는 대형로펌에 취업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트너변호사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으며, 지금은 중국 관련 변호사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전문가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 기업·관공서·로펌의 해외진출이 활발하다. 그 대상은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독일이나 스위스 등 생소한 지역까지 두루 망라되어 있다. 영어나 일어를 공부한 예비법조인들은 허다하지만 베트남어나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공부했다는 사람은 본 기억은 없다.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하는 정도로는 경쟁력이 없다. 한 분야에서 월등히 잘하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  

또한 달라진 변호사 상(像)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가 법전과 판례를 달달 외우고 서면만 잘 쓰면 충분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의뢰인 및 타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 및 협업이 원활한 변호사, 법정에서의 승패를 넘어서 종합적인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변호사, 국제화·정보화 등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선도하는 변호사를 요구하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이력서에 한줄 채우기 위한 일회성 봉사활동, 대회참가, 해외연수는 이제 식상하다. 사회 속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해 본 경험, 작은 인연을 관리하여 인맥화하고 활용했던 사례, 새로운 법률시장의 모색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기관연수나 실무수습을 했던 곳의 지도관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조언을 얻는 예비법조인과 그 지도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예비법조인을 보며 몇 년 후 그들이 각각 성공과 실패의 다른 길을 걷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리한 일일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기 바란다. 우르르 몰리는 곳에 따라갔다가 설사 좁디좁은 그 취업의 문을 요행히 넘었다 해도 그 자리는 오래도록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 예비법조인들이여! 그 시작은 취업하고 나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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