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화 ‘도가니’ 속 법 이야기 - 전관예우와 법조인의 책임감, 그리고 소명의식
조회수 778 등록일 2019-07-26
내용

[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콘텐츠 내용 중 관객과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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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법인 산하 최종화 변호사

 

2011년 개봉되어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트린 영화 ‘도가니’는, 장애 아동들을 상대로 천인공노할 행위를 저지른 자애학원의 교장과 교사가 전관 출신 변호인의 맹활약으로 그 죄과(罪過)에 비한다면 실질적으로 면죄부라 할 수 있는 결과인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비극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재판을 방청하던 등장인물들이 전관예우의 개념과 변호인의 경력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이 있었고, 판결 선고 이후에는 변호인이 직접 무용담을 자세히 설파하면서 작업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기까지 하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의 전관예우 비중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증인과 감정인의 위증, 변절한 공판검사의 핵심증거 은닉, 그리고 합의가 있을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였던 개정 이전 법률의 악용 등 분통이 터지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선고기일에 판사가 낭독한 판결 이유에서는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강간 및 강제추행 사실을 인정하였음이 확인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범이고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였다’는 등의 해괴한 이유로 집행유예(심지어 교장은 징역6월에 집행유예1년)가 선고된 것인데, 이는 매우 오서독스한 형태의 전관예우 판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법 체계라는 거대한 솥을 떠받치는 세 다리(鼎)인 판사, 검사, 변호사를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 일컫습니다.
각 직역의 법조인들은 저마다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직을 수행하는데, 다만 판사의 경우 이와 조금은 다른 차원의 중압감까지 감내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당사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거나, 피고인의 인생이 좌우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판단은 기록으로 남아 국민들의 행동 기준,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까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당사자들의 주장과 입증을 면밀히 검토하여 불편부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민의 법 감정까지 고려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막중한 중압감과 그에 따른 고뇌를 알기에 법정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은 재판부에 대해 고개 숙여 예를 갖추는 것이며, 한편 검사와 변호사는 그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직분에 충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관예우가 존재할 경우 이러한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전관이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얻게 된 방대한 경험과 정제된 법률 지식을 발휘하여 보다 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다는 측면만 놓고 보자면, 이는 응당 합리적인 수요와 공급 메카니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관예우에 대한 사람들의 여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과정과 결과에 작용하는 것까지 미치고 있고, 최근 일련의 사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넓은 영역에서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실현된 바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언론과 의식 수준이 진보한 국민들의 감시로 인해 최근에는 전관예우를 행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녹록지 않은 일이 된 것은 분명하며, 나아가 압도적 다수의 판사들은 극강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전제로 자신의 판단에 개입하려는 유·무형의 압력 일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근자에는 조금은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형태로 전관예우를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건 내용에 대한 정치한 이해 없이 서면 작성에 관여하지도 않고 담당변호사로 이름만 올린 뒤 재판부에 얼굴 도장만 몇 번 찍다가 패소가 예견되는 경우에는 곧바로 담당변호사 지정을 철회해 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말하길, 진정 고귀한 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대법관이나 연방판사와 같은 종신직의 개념이 없고,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판사의 개업 자체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며 훌륭히 직분을 수행하다가 퇴임 이후 다른 직역에 몸담게 되어서도 더욱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귀한 존재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ltn@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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