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김미란 칼럼] 위헌을 문제 삼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조회수 776 등록일 2019-05-08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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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이거 좀 이상하다 싶은 일들이 간혹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면 문제제기하는 것이 좀 쉬울 텐데, 잘 살펴봐야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라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위법이 아니라 위헌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면 오히려 더 쉽게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의 체계상 최고 상위에 놓인 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울까?

최근 의미 있는 판결이 선고됐다가 2심에서 뒤집어진 일이 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A사는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도장·미장·방수·조적공사업, 시설물유지관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인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다른 업체들과 입찰담합을 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총 3회에 걸쳐 시정조치 및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이하 ‘이 사건 선정지침’이라 약칭) 제26조 제1항 제6호에 따르면 입찰공고일 현재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후 6개월이 경과되지 않은 자는 경쟁 입찰에 참가할 수 없고, 입찰에 참가한 경우 그 입찰은 무효다.

이 사건 선정지침에 의해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된 A사는 국토교통부장관을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위 조항(이하 ‘문제 조항’이라 약칭)의 무효를, 예비적으로는 위 조항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행정소송의 대상은 행정처분이므로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추상적 법령이나 내규, 지침 등은 원칙적으로 행정처분으로 보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다른 집행행위의 매개 없이 그 자체로 직접 국민의 구체적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성격을 갖는 경우 특별히 ‘처분적 고시’라 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행정처분도 아니고 예외적으로 행정처분으로 봐주는 처분적 고시도 아닌 것을 행정소송으로 다투려 하면 소의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본안을 살필 필요도 없이 각하된다.

A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을 맡은 1심은 문제 조항이 곧바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므로 별도의 집행행위 없이도 제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 입찰참가 시에는 입찰이 무효여서 낙찰자로 선정될 수 없는 불이익도 실질적으로 받게 되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문제조항은 처분적 고시에 해당한다고 보고, 본안 판단으로 들어갔다.

1심 재판부가 천명한 헌법의 기본원칙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헌법 제37조 제2항, 법률유보 원칙의 천명),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위임입법의 근거 및 한계 명시)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 조항은 A사와 같은 사업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고 있으므로 입찰참가자격의 제한 여부나 사유, 기간의 상한 등 본질적 사항은 반드시 법률로써 정했어야 한다. 또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사항을 하위 법령에 위임하더라도 법률 자체로부터 위임된 내용의 대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 조항의 모법인 공동주택관리법 제25조는 사업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면서 ‘그 밖에 입찰의 방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식을 따를 것’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또한 위 법률의 위임을 받은 시행령에 정해질 내용은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 예상될 뿐 입찰참가자격 제한 관련 사항까지 규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공동주택관리법 제25조 제2호의 위임에 따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5조 제3항 제1호는 국토교통부장관이 고시할 사항을 정하면서 모법이 규정하지 않은 ‘입찰참가자격’을 새로이 규정하는 한편, 다시 국토교통부장관 고시로 입찰참가자격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는바, 이 역시 모법의 위임 없이 모법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1심 재판부는 문제 조항이 모법의 위임 없이 모법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므로 위헌·무효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전혀 달리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문제 조항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적 고시가 아님에도 본안 판단을 한 것은 잘못이라면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소를 각하해 버렸다.

2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문제 조항을 예외적으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적 고시로 보지 않은 이유는 문제 조항을 위반했다고 입주자대표회의의 낙찰자 결정이나 이로 인한 계약이 곧바로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며 과태료 등 불이익을 이유로 사실상 계약체결이 무산돼도 이는 사업자에 대한 직접적 행정제재가 가해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는 사업자는 공동주택관리법령이나 이 사건 선정지침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는 점 역시 문제 조항을 처분적 고시로 보기 어렵다는 근거가 됐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이 크게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1심과 달리 문제 조항을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적 고시로 보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일리 있는 이유와 근거도 있다. 그러나 1심 법원이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법률유보 원칙, 위임입법의 한계를 천명하면서 문제 조항의 위헌적 성격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던 만큼 2심이 소를 각하함으로써 본안 판단에 들어가 살필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문제 조항의 위헌적인 부분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짚어 다툴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과연 어느 아파트가 과태료 처분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제 조항을 어기겠는가? 문제 조항은 위헌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에서는 그 힘을 그대로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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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ap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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