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법농단과 함께 한 2018년에 대한 소회
조회수 809 등록일 2018-12-27
내용

사법농단을 떠올리게 하는 내 주위 에피소드 

 

#1 사업을 하는 A씨는 커다란 송사에 휘말렸다. 재판에 패소라도 하는 날에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는 물론, 회사의 평판이 땅에 떨어져 앞으로의 사업 영위에도 커다란 부담을 짊어질 형편이었다. 여러 차례 재판을 맡겨오곤 했던 A씨는 그전에도 넌지시 재판부와 연이 닿지는 않는지, 상대방이 선임한 변호사가 전관이라 불안한 것은 아닌지 문의한 적이 있는데, 요즘 세상에 무슨 그런 비상식적인 의심을 하느냐며 매몰차게 말을 자르곤 했다. 사법부에 대한 나의 신뢰이자 판·검사 경력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내 변호사 이력에 대한 자위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A씨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냐고 했다. 궁색하게도 "저는 재판부나 힘 있는 판사들에게 사건 얘기를 전할 만큼 거물급 변호사가 못됩니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당시는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사건에서 대법원이 소송 당사자인 고용노동부에 법리를 검토해주었다거나, 일제 치하 징용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전범 기업을 대리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사법농단 관련 뉴스가 연이을 때였다. 오로지 노력과 실력만으로 변호사 생활을 잘 이어왔다고 자부해왔던 나는 그 한순간 로비조차 불필요한 잔챙이 사건이나 맡는 2·3류 변호사를 자처하면서 간신히 곤혹스런 상황을 벗어났다. 

#2 내 사건의 상대방 대리인으로 빵빵한 전관변호사님이 들어오셨다. 원래 사건을 대리하던 큰 로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역임하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법복을 벗으신 지 얼마 안되는,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전관이셨다. 누구에게라도 그 변호사님의 선임 이유가 눈에 보일 수밖에 없다. 수석재판연구관 시절 보관하던 대법원 판결문 초안과 연구보고서 등을 불법 반출했다는 피의사실로 검찰이 몇 차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이를 거푸 기각했다. 그 사이 반출된 자료를 모두 폐기하여 증거인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내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검찰로부터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는데, 판사들에게 구명로비를 했다는 의혹 하나가 더해지며 구속영장도 기각되었다. 그 와중에 사건을 수임하고 변론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따지기 앞서 내 사건 패소에 대한 걱정이 엄습해왔다. 광범위한 법원 내 인맥과 영향력을 실시간 뉴스로 전해 듣고 있던 차였다. 사건이 진행되던 수개월 간의 노심초사는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지기 전 수많은 전관변호사님들을 상대해 왔던 소송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걱정과 달리 재판결과는 바라는 바대로 나왔다. 하지만 패소했다면 절대 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다시금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 선거 시즌이 돌아왔다. 후보들이 열심히 선거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만, 선거를 바라보는 마음은 차갑기만 하다. 다른 변호사 회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련의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변호사단체의 대응이 미흡하고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욕을 먹고 있는지는 회무에 무심한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전 대법관 한 분을 구속하려는 영장심사과정에서 제출되었던 탄원서에 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전 대법관과 대학동기이고, 다른 동기들이 모두 탄원서에 이름을 올리는 마당에 인간적으로 혼자 빠지기는 어렵지 않았겠냐는 옹호론도 있는가 보다. 전임 협회장에 대한 사찰이나 대한변협을 압박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대법원에서 논의했다는 의혹 때문에 변협 또한 피해자로 인식되는 마당이다. 변협에 대한 사법농단 의혹이 없더라도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헌정질서가 파괴된 사법농단 자체만으로도 변협은 중대한 이해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대한변협이나 서울변회 회장은커녕 말직도 감당하기 어려운 나조차 이런 탄원서에 이름을 올려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이 비록 개인자격이라 할지라도 법조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법적폐의 척결도 해를 넘기고
적폐척결이 화두였던 2018년이 저물어 간다. 사법적폐였던 사법농단에 대한 처리도 해를 넘길 모양이다. 관여가 의심되는 판사 수만 100명이 훌쩍 넘어 사법부를 전면 재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탄이 나오고, 수사에 임하는 검사와 수사인력도 재벌과 권력의 심장부를 겨눴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법원이 자체 정화하겠다며 꺼내들었던 징계절차는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끝난 반면, 그나마 의욕적이던 수사는 일명 ‘방탄판사단’의 줄줄이 영장기각으로 동력이 흩어졌다. 적폐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고 얼마나 쌓여왔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새 내 주위에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고, 무력감을 느낄 만큼 강고해졌다. 법조인인 나도 이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수사와 재판의 대상에 불과한 일반인들이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그래도 참고, 버텨내고, 조금씩 전진할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고사하고 눈앞의 상황조차 또렷이 보이지 않기에 적폐 아닌가.

사법농단과 관련한 낭패감과 자괴감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 관련 심층기사를 거듭 취재해 언론사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던 기자에 대한 징계사건을 맡았고, 회사로부터 징계철회를 이끌어 내며 한해를 마무리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오민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출처[https://www.lawtimes.co.kr/Legal-Opinion/Legal-Opinion-View?serial=149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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