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 이야기]우리 아파트 진입도로에 땅 주인이 나타난다면?
조회수 937 등록일 2018-07-25
내용


서울의 한 아파트 입구 모습. 동아일보DB 

아파트에는 진입도로가 있습니다. 도로에서 아파트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쓰이는 통행로입니다. 진입도로가 없는 아파트는 없지요. 주택법령이나 주택건설기준 등에서 기간도로(보행자 및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도로)와 접하거나 기간도로로부터 아파트 단지에 이르는 진입도로가 있어야만 아파트 건설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진입도로 소유자가 임차료를 내라고 한다면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20년 가까이 아파트 진·출입에 사용해 오던 이 진입도로에 어느 날 소유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경매를 통해 해당 토지를 낙찰받았다면서 소유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일단 그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자신의 도로를 아무 대가 없이 진입도로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토지에 대한 월 임대료가 얼마인지 감정업체에 맡겨 임대료 감정을 하더니 자신이 위 토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때로부터 소유권을 상실할 때까지 매월 임차료를 지급해야 한다며 소를 제기했습니다. 부당 이득을 청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된 사정일까요? 이 아파트를 건설한 A건설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소유권을 확보했습니다. 문제 된 진입도로로 사용된 토지 역시 A건설이 소유권을 취득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유권을 확보한 토지 위에 아파트를 다 짓고 나면 건설사는 분양을 통해 토지 및 아파트의 소유권을 수분양자(분양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전하게 됩니다. 

A건설은 당시 법령에 따라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이 토지를 진입도로로 사용할 수 있게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아파트 신축공사와 진입도로 공사를 마친 뒤 관할관청에 사용승인을 신청해 약 7개월 뒤 사용승인을 받았지요. 사용승인이란 신축된 건물이 건축법이나 주택법 등 관련 법령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여 그 사용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용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분양을 통해 그 토지 및 아파트의 소유권은 수분양자들에게 이전되고, 간혹 단지 내 도로 등은 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이 되기도 하지요. 어찌 되었건 이 토지를 아파트의 진입도로로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하자가 없도록 말입니다. 

문제는 A건설이 사용승인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는 그 사이 A건설 소유의 위 토지에 대하여 가압류 등기가 완료되고 말았습니다. 가압류는 자신의 금전채권 보전을 위하여 채무자의 재산에 행하는 채권보전 절차에 불과하므로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변제하기만 하면 아무런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는다면 채권자는 판결 등을 받아 가압류했던 채무자의 재산을 강제경매 등을 통해 매각해 자신의 채권을 추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아파트 사용승인 신청 후 부동산 가압류가 완료됐고, A건설이 파산하여 자신의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채권자가 강제경매를 실시한 것입니다. 이로써 사용승인 된 지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의 진입도로에 갑자기 소유자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강제경매 절차에서 낙찰받아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이지요.

소유자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자신의 땅인데 아파트 입주민들이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아파트 진·출입로로 사용하고 있으니 사용 대가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 토지 원소유자의 사용수익권 포기가 중요 

법원은 이런 경우 어떻게 판단할까요? 대법원은 토지의 원래 소유자가 토지의 일부를 도로 부지로 무상 제공하여 소유권자로서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하고 이에 따라 주민들이 그 토지를 무상으로 통행하게 했습니다. 이후에도 그 토지 소유권을 경매, 매매, 대물변제 등에 의하여 특정 승계한 사람 역시 그와 같은 제한을 받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용과 수익의 제한이라는 부담이 있다는 사정을 알고서 토지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보아 도로로 제공된 토지 부분에 대하여 본래 소유권자로서 누리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대법원 1998. 5. 8. 선고 97다 52844 판결 등 참조) 

또 토지 소유자가 스스로 그 토지를 도로로 제공해 인근 주민 등에게 무료로 통행 권리를 주었거나 사용수익권을 포기한 것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해 판단합니다. 원소유자가 그 토지를 소유하게 된 경위나 보유 기간, 나머지 토지들을 분할하여 매도한 경위, 규모, 도로로 사용되는 토지의 위치, 인근 다른 토지들과의 관계 등은 물론 나눠서 팔린 나머지 토지들의 효과적 사용과 수익을 위해 그 토지가 기여하고 있는 정도 등 여러 가지 사정들을 말이지요.(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9다 8802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소유자는 아파트 사용승인일 이전에 가압류 등기가 되었으므로 원소유자였던 A건설은 독점적이고도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비록 사용승인일 이전에 가압류 등기가 되었더라도 A건설이 사용승인을 신청할 무렵 이미 위 토지를 아파트 입주민들과 인근 주민 등을 위해 통행로로 무상 제공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이 토지에 대한 독점적이고도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은 포기한 것이죠.(의정부지방법원 2018. 7. 5. 선고 2018나 202492 판결 등 참조)

가만히 앉아서 매월 임대료 수익을 올리리라 생각하고, 아파트 진입도로로 쓰이는 토지를 받은 사람은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유권은 얻었으되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80724/91202205/1]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