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김미란 칼럼] 현수막 철거와 재물손괴
조회수 684 등록일 2023-10-11
내용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 외벽에 현수막이 붙었다. 현수막에는 ‘목적: 재개발(재건축) 소통 커뮤니티’와 이 커뮤니티의 카페 주소 등이 기재돼 있었다. 입주민이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설치한 것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위 현수막이 사전에 관리주체나 입대의 동의 없이 부착됐다는 이유로 철거할 것을 결의했다. 위 현수막은 시가 3만원 상당의 재물로서 소유자의 의사에 반해 임의로 제거한 것은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 것에 해당한다며 입대의 회장 A와 관리사무소장 B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됐다. A는 입대의 의결 결과에 따라 철거를 지시한 것이고 B는 입대의 지시를 받아 철거를 진행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대형 광고물을 공동주택 단지 안에 설치하거나 발코니 전면과 건물 외벽을 이용하는 광고 행위, 광고물, 선전물, 스티커 등을 게시 또는 부착하는 광고 행위에 대해 지정된 장소 이외의 장소에 붙이거나 미관을 해치는 행위는 관리주체가 동의하지 않도록 관리주체의 동의기준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현수막을 설치한 입주민은 관리주체인 관리소장이나 입대의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게시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입대의는 A와 B의 행위가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법원은 이들에게 각 벌금 30만원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선고했다. 가벼운 형이나 유죄 판결임에는 틀림없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은 입주자 등은 일정한 행위를 할 경우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공동주택에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도 이에 포함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7호 및 위임에 따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제29조 제2호에 의하면 ‘입주자 등의 공동사용에 제공되고 있는 공동주택단지 안의 토지,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에 대한 무단 점유행위의 방지 및 위반 행위 시의 조치’를 관리주체의 업무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동주택단지 내에 표지물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한 표지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 범위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법원은 공동주택관리법령 어디에도 위와 같이 법령에서 정한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표지물이나 게시물에 관해 관리주체나 입대의 회장이 스스로 이를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 집중했다.

공동주택관리법의 목적이 입주민들의 분쟁까지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거나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에서 법이 정한 권리 구제절차를 배제하고자 하는 취지까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관리주체로서는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 표지물에 대해서는 자진 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으로 구제하는 등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위반행위 시의 조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단 현수막이 관련 법령이나 규약에 따라 적법하게 설치된 것이 아닌 점, A와 B가 스스로 철거할 권한이 있다고 오해해 범행에 이른 점, 현수막 자체를 훼손한 것은 아닌 점 등이 참작됐다.

범죄는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할 뿐만 아니라 책임까지 모두 갖춘 경우에 성립한다. 구성요건은 객관적 구성요건과 주관적 구성요건을 갖추면 인정되나 위법성은 구성요건에 일단 해당하면 일응 인정되고 정당방위, 정당행위, 긴급피난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조각된다. 공동주택에 광고물 등을 게시할 경우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어겼다 하더라도 함부로 철거할 수는 없다. 입대의 의결이 능사는 아니며 범죄마저 정당화시킬 수 있는 만능키는 더더욱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http://www.ap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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