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생의 무게 : ‘트롤리’와 예견가능성
조회수 821 등록일 2023-01-27
내용

[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신작 드라마 <트롤리>를 보면서 마음속 깊이 잠언 또는 격려로 자리 잡고 있던 이 말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좀 극적인 요소가 더해지기는 하였지만 수긍할 수 있는 개연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진흙밭을 내딛는 것처럼 한 발 한 발에, 삶의 하루하루에 수고와 고뇌가 서려 있는 것을 꽤 현실적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건너고 있는 우리에게 그 바다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느 누구도 그 바다를 지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큰 위안이 됩니다.

규범의 영역에서 ‘예견가능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떠한 결과나 사태를 미리 내다볼 수 있었음에도 회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아니한 채 감수하고 용인하였다면 거기에는 일정한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반대로 예견이 불가능했다면 아무리 중대한 결과가 빚어졌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견가능성은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행위자가 처해 있었던 상황에 평균적인 일반인을 두고 무엇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인지를 사후적으로 따져 보는 것입니다.

실제 사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상해행위를 피하여 정신없이 도망치던 피해자가 차량에 치어 사망하게 된 경우,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가해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가해자로서는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며, 그런 식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상해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상해치사죄의 성립을 인정하였습니다. 피해자가 상해행위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칠 수 있고, 오직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에만 주의가 쏠려 있는 탓에 주위를 충분히 살피지 못할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그 결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결과에 관하여 예견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당시 상황에서 행위자가 구체적으로 이를 예견하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고, 눈앞에 벌어진 결과에 놀라 온몸이 얼어붙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만약 시간을 되돌려 결과가 발생하기 직전으로 돌아가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위자로서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트롤리>에서 다루고 있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인과관계, 인생의 굴레는 설령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에 따른 모든 번뇌와 갈등,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보는 이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로 독자 여러분에게 격려가 담긴 새해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끝.

이재민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webmaster@lt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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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3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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