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화 ‘헤어질 결심’ - 사랑과 붕괴 그리고 범죄
조회수 1,124 등록일 2023-01-03
내용

[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류인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 류인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사랑과 붕괴는 서로 같은 말일까요. 누구나 평생 자기 자신이라 믿어온 자신의 모습이 사랑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한 무너짐은 그것이 ‘붕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보긴 힘든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과 붕괴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작중 형사인 해준(박해일 분)은 (비록 불륜이지만) 피의자였던 서래(탕웨이 분)와 사랑에 빠짐으로서 수사를 그르치게 되고, 이로 인해 형사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고백하는 해준의 말은 서래의 입장에서는 사랑 고백과도 같았습니다. 이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냐는 해준의 말에 서래가 대답한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는 명대사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앞선 소개만 보면, 본 작품이 템포가 느린 로맨스 영화인가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작품이 정말 수작인 이유는 사랑의 본질과 형태를 긴박한 범죄스릴러로 그려놓은데 있습니다. 작품을 보다보면 단지 두 주인공의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인인 서래의 과거와 범행동기, 추가 범행의 진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작품에 빠져들게 됩니다.

물론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좋지만, 사랑보다는 법을 더 잘 아는 저는 이번 칼럼에서 작품에 드러난 흥미로운 형사법적 쟁점들을 소개하고 해설해 드리고자 합니다.


○ 서래가 자신의 남편(전기수)에 대한 살인 혐의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

서래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살인 혐의로 조사받는 과정에서 담당형사인 해준을 알게 되고, 둘은 수사과정에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됩니다. 그러다가 (실제로는 서래가 위조한)남편의 유서가 발견돼 서래는 범죄 혐의에서 벗어나고, 서래와 해준은 교제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교제로 인해, 해준은 서래에 대한 의심을 접게 되고 서래는 그 사이에 수사자료인 사진들을 모두 불태우고 해준이 녹음한 파일을 모두 삭제합니다.

이에 대해, ① 서래가 유서를 위조함으로서 수사가 종결된 것과, ② 서래가 해준과 교제함으로서 수사를 그르친 것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형법 제137조, 줄여서 위계공집방)에 해당하는지 문제됩니다.

아울러, ③ 서래가 수사자료인 사진을 모두 불태우고 해준의 녹음파일을 삭제한 것이 증거인멸(형법 제155조)에 해당하는지 문제됩니다.

위계공집방이란, 공직자 등 상대방의 오인, 착각, 부지를 이용해(위계)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도록 하여 공무를 방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판례는 수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위계공집방에 대해서, 수사기관은 증거조사를 통해 충분한 수사를 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의자가 거짓 진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불충분한 수사로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면 위계공집방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판례는 피의자 등이 적극적으로 허위의 증거를 조작하여 제출하고 이로 인해 수사기관이 나름의 충실한 수사를 하더라도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여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면 본 죄가 성립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① 서래는 피해자의 유서를 위조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였고 이에 대해 피해자의 자필로 보일만큼 충실한 수사를 하여도 조작된 것임을 발견하기 힘들었으며 위조된 유서로 인해 수사가 종결되었으므로 위계공집방이 성립할 것으로 보이나, ② 수사기관은 피의자와의 개인적인 유대관계와 무관하게 충실히 수사할 의무가 있으므로, 비록 서래가 해준과의 교제를 이용하여 자신에 대한 재수사를 방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위계공집방이 성립한다고 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단, ③ 서래가 자신의 범행에 대한 사진들을 불태우고 녹음파일을 삭제한 행위는 증거인멸죄의 구성요건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고, 판례 또한 일관되게 자신에 대한 증거인멸은 죄에 되지 않는다고 보므로 본 죄가 성립할 여지는 적습니다.

○ 서래가 사철성(별명 ‘철썩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새남편인 호신을 사망하게 한 행위

위와 같은 서래의 범행이 드러난 이후, 해준은 형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아내가 거주하는 이포로 근무지를 옮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래는 이포에서도 자신의 새남편인 호신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조사받게 되고, 해준은 서래가 진범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진범은 호신에게 원한이 있던 사철성이었고 그가 평소 자신의 어머니가 죽으면 호신을 살해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평소 사철성의 폭력성을 잘 알던 서래가 사철성의 어머니를 약으로 살해함으로써 그가 호신을 살해하도록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철성의 살인에 대해 과연 서래가 교사‧방조의 죄책을 지는지 문제됩니다.

교사란 범죄 의사가 없는 자에게 범의를 일으켜 범행에 나아가도록 하는 행위를 의미하고, 방조란 이미 범행결의가 있는 자의 범행을 돕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교사 내지 방조의 방법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불문하며, 특히 방조의 경우 범행결의를 일으키는 것을 강화하도록 돕는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이 부분에서, 철성은 자신이 호신으로부터 당한 사기피해로 인해 그 이전에도 호신을 살해하고 싶어 했으나 다만 자신의 병약한 어머니를 봐서 참아왔던 것으로 보이고, 이와 같은 범행 결의가 어머니의 사망으로 강화되어 살인을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철성은 서래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호신을 살해하도록 사주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형법과 판례에 따르면, 교사와 달리 방조의 경우에는 실제 범행을 실행한 정범이 범행이 도움받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도움을 제공한 자에게 방조범이 성립합니다(편면적 방조범).

따라서 비록 서래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범죄에 나아가도록 도운 사실을 철성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서래는 철성이 범한 살인죄의 방조범으로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다소 딱딱한 형사 쟁점과 분석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연말과 강추위가 다가오며 사랑하는 사람의 품이 더욱 생각나는 요즘, 사랑의 본질을 흥미롭게 그린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이 범하는 범죄란 무엇일까요.

류인제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webmaster@lt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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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37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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