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김미란 칼럼] 적폐라는 오명을 피하려면
조회수 877 등록일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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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부대표 변호사

 

아파트는 마치 작은 나라와도 같은데,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관리주체는 행정부, 동대표로 구성된 입대의가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며 국회를 연상하게 한다. 새로 출범한 차기 입대의가 전임 입대의와 대립각을 세울 때는 전쟁을 일삼는 정치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아파트의 돈은 일종의 공금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징수해 관리하고, 정해진 용도로 집행하지 않으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국가의 축소판 같은 아파트에서 이런 부정이나 비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정치공세를 떠올릴 만큼 치열하다.

최근 한 아파트 입대의가 관리사무소장, 전임 입대의 회장 및 감사, 총무 이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도급비 속에 직원들의 인건비가 포함돼 있는데 소장을 비롯해 직원들에게 수년간 수차례에 걸쳐 수당, 급여지원금, 회의 참석비, 복리후생비, 명절 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인건비를 이중 지급했다는 것이다. 또한 관리규약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대표에게 명절 격려금, 휴가금 등을 지급해 아파트에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입대의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불법행위는 고의·과실에 기한 가해행위가 존재해야 하고, 손해가 발생해야 하며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성립한다. 이때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 따라서 충분한 증명이 이뤄지지 않는 한 단순히 불법행위의 의심이 든다는 사정만으로는 결코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아파트 입대의는 도급비 외에 소장에게 수년에 걸쳐 각종 수당 명목으로 인건비가 이중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당 지급은 당시 입대의의 결의를 전제로 집행된 것이며 그 내역 역시 소방안전관리보조자에게 선임 수당을 지급하거나 관리규약에 따른 한전 검침 수당 등이었다. 법원은 수당 명목으로 지급한 돈이 이미 도급비 속에 포함된 것이어서 이중으로 지급해서는 안 되는 성격의 돈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동대표에게 지급된 돈은 어땠을까? 아파트 관리규약에 운영비로 동대표에게 명절 격려금과 휴가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대부분 1인당 1회 10만원 정도로 지급된 돈이 명목이나 의례성에 비춰 과다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일반적 풍속에 해당한다고 볼 만큼 지급 사례가 있다며 관행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 배경에는 매년 관리비 예산에 위 비용을 복리후생비 항목에 포함해 승인받고 입대의 정식 결의를 거치는 등 나름대로 관리규약에 따른 지출 절차를 거쳐 집행된 점, 지급 내역이 공개돼 입주민들 누구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이 있었다. 따라서 수당·복리후생비 등을 지급한 것이 횡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또 관리의 편의상 전임 입대의 회장 개인 명의 계좌를 운영비 계좌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실제 회의 출석 수당, 다과, 식사 등 회의 경비로 사용했다면 이를 횡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엄연히 공금인 아파트의 돈을 개인 계좌에 넣어 운용하거나 수당 등의 명목으로 자금이 추가 집행된 듯 보이면 엄청난 비위라도 저지른 것 같이 추궁당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한 입대의는 전임자들의 비위를 파헤치는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며 형사적으로는 업무상 배임이나 횡령의 죄책을,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 사안이라면 그저 괴롭힘에 다름없다. 법원의 판결로 명명백백 밝혀지더라도 과정은 녹록치 않다. 규정과 절차를 살펴 애시 당초 분란과 갈등의 단초가 될 만한 싹을 틔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http://www.ap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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