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뤼트허르브레흐만의 위대한 수업과 오답노트
조회수 665 등록일 2022-12-07
내용

[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와 드라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 및 사건 등과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박영상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 박영상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여러분은 무슨 업무를 할 때 가장 고통스러우신가요? 저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소송의 판결문과 서면을 검토하면서, 그 안에 담긴 확신에 찬 오답을 읽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여느 변호사들처럼 “승소 100%인 사건이라면 애당초 사건화되지 않았다”라는 진통제를 복용해보려고 해도, ‘이런 주장을 했으면 어땠을까?’,‘이런 증거는 내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서면들은 날카로운 종이가 되어 갑작스럽고 서늘하게 마음을 긁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지나고 나서야 오류와 실수가 너무나도 선명히 보인다는 점인데, 사실 세상의 많은 일들도 답을 알고 나면 너무나도 선명하고 자명한 것들 투성입니다. 시험이나 소송뿐만 아니라 노예제도와 인신매매, 신분제도와 마녀사냥, 핵무기 개발 등 과거에 빚어진 수많은 오답들은 지금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선명하게 잘못된 일들이어서 비판하기 너무 쉬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섬뜩한 점은, 지금 우리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사상, 제도들도 미래세대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반박하기 쉬운 확신에 찬 오답, 미래세대와의 경쟁에서 100% 패소가 예정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최근 국내외 유명학자들의 이론과 비전을 소개하는 EBS ‘위대한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네덜란드의 유명 사상가 뤼트허르브레흐만이 역시 같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휴먼카인드-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의 저자인 뤼트허르브레흐만은 인간은 모두 선하고 다정하다(Kind)는 성선설을 확신하는 학자이지만, 그런 그도 미래세대가 보기에 우리는 수많은 악행을 행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역사학자 뤼트허르브레흐만이 보기에 우리 세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오류 중 하나로 ‘동물학대’를 지적합니다.

저 역시 학부시절의 토론학회 활동을 하면서, 동물실험에 관한 토론에 찬성 측으로 참여하여 국내 최대 동물실험센터 개소에 참여하신 생명시스템대학 교수님과 인터뷰를 하는 등 많은 조사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실험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만 있을 뿐 누구도 동물실험 자체가 ‘윤리적·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작해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활용하는 것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중 부정논리 정도만 존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토론을 하면서, 마음 한 켠에 계속되는 반박을 애써 모른 척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다행인 점은,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필요하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존재와 사상은 구축(驅逐)되고, 세상은 어렵고 불편하지만 선한 것들로 변모하며 그 간극을 ‘기술’이 메워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인간의 역사가 조금씩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극복해나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률’ 역시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사회의 문화와 인식을 반영하지만, 사회의 문화와 인식을 선제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만약, 법이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영역이라고 한다면 이는 법 스스로 사회의 변화와 진보에 방해가 되는 요소임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1년 동물보호법을 제정 및 시행하였고 그 이후 실제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동물보호법 위반 사례로 실형 선고가 늘어나고, 최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형사3단독은 경북 포항 시내와 대학교에서 고양이를 살해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사체를 전시한 학대범에 대하여 징역 2년 6월이 선고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법무부 등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3398명 중 검찰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의자는 93명(2.8%), 구속기소로 이어진 인원도 5년간 단 2명(0.1%)에 불과했던 점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동물보호법 등에 위반한 자에 대한 판례의 태도와 제도를 통해 동물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동물실험이나 무분별한 육식은 미래 인류가 현대 인류에 대하여 가장 비난하고 야만적이라고 비판할 만한 문화라는 점은 자명하며 법이 그런 문화에 일조해서는 안됩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노예제도나 인신매매가 합법이었던 시대의 참혹함은 지금의 윤리적·도덕적 잣대에 비추어 도저히 용인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가 동물에게 행하고 있는 일 역시 사실 미래사회에 보여주기 너무나도 부끄러운 성적표입니다. 현재 매해 520억 마리의 닭, 26억 마리의 오리, 22억 마리의 토끼, 13억 마리의 돼지를 도축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에서는 돼지사육을 위하여 2개 동으로 아파트의 모습을 한 26층짜리 건물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현재 488만 마리의 동물이 실험동물로써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있는 산업 전반에서 생각해보면 끔직하게 조직적이고 잔인한 동물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만한 자료는 충분히 많습니다. 옳은 일이고, 나아갈 방향이 분명하다면 이를 제도적으로 수정해나가고, 이에 관한 규정들을 만들거나 해결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 역시 법의 역할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식을 중단하라거나, 동물실험을 일체 금지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래사회에는 현대 인류가 이렇게 긴 노동시간을 투자해가며 살았다는 점에 경악하고, 매해 몇백억 마리의 죽였다는 사실을 끔찍해 하며, 아무런 생각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일에 분노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하니 노동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동물실험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은 50년 후 인류의 오답노트에 ‘미개인의 생각’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우리의 법 역시 그러한 오답 노트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입니다.

 

박영상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webmaster@lt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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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3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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