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법과 자비
조회수 891 등록일 2017-05-03
내용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렇게 여겨 베푸는 혜택. 자비(慈悲)에 대한 사전적 의미입니다. 자비는 불교의 근본 사상이지요. 불교에서 자비는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낙(樂·즐거움)을 주고, 고(苦·괴로움)를 없애는 일을 말하며 부처의 자비를 특별히 ‘대자대비’라 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법의 세계에도 과연 자비가 깃들 수 있을까요? 부처님오신날, 불교의 근본 사상인 남을 위한 진실한 사랑, 자비가 법의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사실 법과 자비는 서로 잘 어울리는 말은 아닙니다. 법은 공명정대하고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Dike·사진)는 심지어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 눈에 보이는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법에도 눈물은 있고, 저간의 사정을 살피는 귀가 있습니다. 정상참작이라 불리는 형의 감경 사유가 법이 베푸는 일종의 자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형사 법정에서 판사는 피고인에게 죄가 있는지를 가려 만일 죄가 없다면 무죄방면을, 죄가 있다면 적당한 형벌을 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죄인 경우라 하더라도 판사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형벌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법에는 범죄마다 내릴 수 있는 형벌의 종류가 정해져 있고, 그 형벌의 양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도 범위가 있습니다. 이를 법정형(法定刑)이라고 하지요.  

 

법정형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가중 또는 감경 요소를 가미하여 실제로 형을 선고할 때는 같은 죄목이라 하더라도 형벌의 종류나 경중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죄목이라도, 심지어 같은 범죄 사실로 재판을 받는 공범(共犯) 간에도 받는 형벌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참작해야 하는 정상(情狀·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 즉 감경 사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 성행(性行·성품과 행실),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대법원 산하 독립위원회로서 양형위원회는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이 반영된 양형 기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이 자비를 베풀 때 어떤 사정을 살펴야 할지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양형위원회를 통해 양형 기준을 공개하고 점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상참작이라는 형의 감경 요소 역시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불공정한 법의 집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법의 자비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사법부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양형 사유여야 합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70503/841830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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