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의뢰인의 말은 100% 믿어야 할까
조회수 644 등록일 2017-04-05
내용

 

형사재판정에 수의(囚衣·죄수복)를 입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들어옵니다. 방청석에 있던 노인은 그가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고 맙니다. 단순한 슬픔이라기엔 너무나 복잡한 표정이라 제 사건 의뢰인을 옆에 두고도 그 사건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의를 입었지만 그조차 단정해 보일 정도로 청년의 얼굴은 순수하게만 보였습니다.  

첫 재판인지 재판장은 그 청년에게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를 묻습니다(인정신문). 비록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 중이지만 만일 주소가 변경되거나 하면 법원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물론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고지도 잊지 않습니다.  

이어 검사의 공소사실 진술이 이어집니다. 순수하고 단정해 보이는 그 청년이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질러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인지 궁금하던 차라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칼로 아버지를 위협하고,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하고, 연행되는 차 안에서 발로 차 차문을 부수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죄명은 특수존속협박, 공무집행방해, 공용물 손괴 정도가 될 것입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청년의 얼굴이 달라 보입니다. 정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검사의 공소사실 진술에 이어 죄의 인정 여부를 묻는 절차가 진행됩니다(공소사실에 대한 인부). 청년은 공소사실 중 특수존속협박에 대해서는 무죄를 주장하고 나머지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당시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칼을 아버지에게 겨누고 협박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번에 드는 생각은 만취 상태여서 기억이 안 난다면 어떻게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거나 협박 사실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입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무죄를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방청석의 그 노인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재판이 시작되었을 뿐 유죄 판결이 선고된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저 노인이 혹시 아들로부터 칼로 위협받았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예단(豫斷), 즉 미리 판단하는 것입니다. 법조인이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리 쉽게 예단할 수 있다 보니 그토록 강조해서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단은 분명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의뢰인만 믿고 그의 주장대로 변론하는 것이 최선의 변론은 아닙니다. 의뢰인의 주장에 누구나 제기할 만한 의문이 있다면 그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고, 그대로 밀고 나갔을 때의 참혹한 결과는 바로 의뢰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의 말만 그대로 옮기는 앵무새 노릇은 변호인의 진정한 역할이 아닙니다. 의뢰인을 위해서라도 ‘의뢰인을 믿되, 온전히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미란 법무법인 산하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70405/83695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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