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범죄와 손익상계
조회수 990 등록일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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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한 아파트에서 14년간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해 온 A씨와 약 10년간 입주자대표회장을 맡아 온 B씨가 장기수선충당금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하지 않고 함부로 사용한 탓에 수사를 받게 됐다. 이들은 장기수선계획 없이 장충금을 수도 입상관 교체공사비용으로 사용하는 등 약 8년간 175회에 걸쳐 약 4억3900만원을 임의 사용했다. 또 관리규약에 따르면 관리 외 수입은 예비비로 적립하는 경우 외에는 원칙적으로 회계연도 종료 후 장충금으로 적립해야 함에도 이를 위반해 약 8년간 98회에 걸쳐 7900만원을 다른 용도로 임의 사용했다.

횡령은 형사적으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고, 업무상 임무를 위반하고 저지른 업무상 횡령은 가중해 처벌되는 중범죄다(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민사적으로도 횡령은 불법행위에 해당돼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장충금을 정해진 용도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하지 않은 위 횡령금액 전부가 손해배상액에 해당할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위 사안에서 아파트는 횡령이 발각된 A씨와 B에 대해 관련 법령과 관리규약을 위반해 위법하게 지출한 위 금액 전부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A씨와 B씨는 이 아파트에 장기수선계획이 없어 장충금을 계획에 따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 결의에 따른 특정 용도에 집행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관리 외 수입은 용도를 특정하지 않고 있어 아파트 수선에 필요한 비용에 집행했더라도 적법하고,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 이상 아파트에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고 다퉜다.

장충금은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공동주택의 효용과 교환가치 보존을 위해 강제적으로 적립·사용되는 돈으로 법령과 규약에 정한 절차를 거쳐 집행해야 하는 등 사용 용도와 절차는 물론 사용 시기까지 엄격히 제한된 돈이다. 또한 예비비로 적립하지 않은 관리 외 수입 역시 사용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된 장충금으로 적립할 대상이므로 장충금에 준해 관리·사용돼야 한다. A씨와 B씨가 이처럼 용도와 사용 절차가 엄격히 제한된 금원을 임의로 사용해 횡령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일응 위 횡령금액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장기수선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항변은 관련 법령에 따르면 관리주체에게 장기수선계획 수립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장은 장기수선 수립의무가 있는 관리주체 또는 관리주체인 위탁관리사의 직원으로서 직접 이를 수립할 수 있고, 장충금 징수 지휘 및 관리 역시 업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1, 2심 법원은 모두 횡령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상 일응 횡령금액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손해배상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때에는 손익상계의 원칙을 적용했다.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이 되는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새로운 이득을 얻었고, 그 이득과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인 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면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손익상계가 허용된다.


사안에서 A씨와 B씨가 사전에 거쳐야 할 장기수선계획 수립 및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위법하게 장충금 등을 임의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들이 횡령한 돈은 CCTV설치, 정화조 수리, 엘리베이터 수리, 옥상 방수 등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과 복지에 필요한 시설의 설치나 수리에 사용됐다. 이런 금액은 횡령금액에서 공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계산은 1, 2심이 조금 달랐다. 1심은 손익상계로 횡령금액이 모두 공제돼 배상할 돈이 없다고 본 반면 2심 법원은 아스콘 구입비용, 화재감지기 구입비용 등 약 500만원 상당은 실제로 허위로 부풀려진 영수증으로 보인다면서 아파트를 위해 지출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금액 상당의 배상의무를 인정했다.

손익상계 법리에 따라 배상해야 할 손해액은 최대한 형평에 맞게 산정된다. 그러나 손익상계에 따라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액이 제로가 된다 해도 관련 법령과 절차를 어기고 함부로 사용한 횡령의 범죄 전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출처 [http://www.ap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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